오늘도 성령께서 강권하신다!
성령께서 제게 주시는 마음은 언제나 “예수님과 친밀히 동행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전해 달라는 요청을 받으면 언제나 주제는 “예수 동행”입니다.
그러다 보니 저도 24 시간 주님을 바라보게 됩니다.
이 일에 대하여 “너무 지나치지 않은가?” 걱정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심지어 “예수님 스토커가 되란 말이냐?” 면저 병적이라고 조롱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것도 지나치면 좋지 않은 법입니다.
그래서 그런 말을 들을 때, “너무 지나친가?” 하고 저를 돌아보게 됩니다.
그러나 제 주위에서 “지나치게” 주님을 바라보는 사람은 거의 보지 못하였습니다.
오히려 “지나치게” 주님을 의식하지 못하는 목회자와 그리스도인들은 너무 많이 봅니다.
그것으로 인하여 애통해하시는 주님의 마음이 너무나 강하게 느껴지기에 ‘에수 동행 운동’을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일관되게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단호한 태도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수 23:8 오직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가까이 하기를 오늘까지 행한 것 같이 하라
수 24:15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하니
사도 바울은 더욱 단호합니다.
갈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이 보다 더 “지나친” 태도가 어디 있겠습니까?
제 마음은 너무나 분명해집니다.
저는 오직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하여 말씀하시고 내 주하시는 성령께서 깨우쳐 주시는 대로 가려고 합니다.
그것이 한국 교회나 다른 사람을 위한 일이기에 앞서 제가 살 길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진리는 선포될 뿐이고 삶으로 증명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해야 할 일이 많은데 언제까지 예수님만 바라보라는 것인가?’ 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이 함께 하심을 진정으로 믿지 않는 사람의 말입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과 세상을 보는 것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항상 같이 있어야 합니다. 언제나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기도와 행동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같이 가야 합니다. 기도는 영혼이 숨쉬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문제는 세상에서 해야 할 일 때문에 예수님을 바라보는 일을 놓치는 것입니다.
그것이 치명적입니다.
오늘도 아침에 기도하는 중에 제 안에서 성령께서 강권하십니다.
“24 시간 예수님을 바라보라!”
“주님 안에 거하라, 그러면 주님이 내 안에 거하실 것이다”
“옛사람이 죽었음을 선포하라! 그러면 주님의 새생명으로 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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